- 인수봉의 아침, 상장능선과 그 뒤에 도봉산 -
북한산과 삼각산은 하나의 산에 두개의 이름이 존재하므로 혼동과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삼각산이라는 원래 이름으로 복원 시켜야 한다는 주장과 우리가 오래도록 불리어온 북한산을 구태어 다시 삼각산으로 바뀌어야 하는 번거로움은 더 많은 혼란만을 자초할 뿐이라는 주장이 팽팽이 맞서고 있다. 삼각산이란 이름이 1000년의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북한산은 100년의 역사를 가진 이름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북한산을 삼각산으로 변경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가노라 삼각산(三角山)아 다시 보자 한강수(漢江水)야
청음 김상헌(1570~1652)이 병자호란 때 청(淸)나라에 항복해서는 안 된다며 끝까지 척화를 주장하다 중국 심양으로 끌려가면서 읊은 시조다. 이 시조에 나오는 ‘삼각산’은 지금의 ‘북한산’을 지칭한다. 서울을 상징하며 한국의 5대 명산 중(북한산, 덕유산, 지리산, 설악산, 한라산)의 하나로 꼽히는 삼각산(북한산)을 그 언제부턴가 북한산이란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서울의 산, 서울의 진산 북한산을 옛날에는 삼각산이라 하였다.
북한산은 도봉산과 함께 북한산국립공원이다. 오늘도 삼각산을 오르며, 북한산과 삼각산은 왜 두개의 이름을 가져야 하는가 이런 생각을 하여 보았다. 삼각산 문필봉에서 어떤 등산객이 이렇게 물었다. 삼각산이 어대에 있느냐고 말이다. 그분은 몇 년전에 대구에서 이사를 왔다고 하였다. 그분도 북한산과 삼각산을 각각 다른 산으로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여기가 북한산이고, 전에는 삼각산이라 불렀다고 말해주었다.
고려 및 삼국새대를 거치면서 조선시까지는 삼각산이라 불리었는데, 조선 말기 일제강점기에 북한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기록들이 전한다. 지금도 북한산에는 수없이 많은 사찰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그 사찰 입구에 있는 일주문에는 삼각산 도선사, 삼각산 승가사, 삼각산 진관사, 삼각산 화계사 등으로 현판이 걸려있다. 이것으로 보면 옛날에는 삼각산이었다가 언제부터인가 북한산으로 바뀌어 불리어 오고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북한산을 다시 삼각산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 북한산에는 북한산성이라는 역서적으로 중요한 사적이 자리하고 있다. 그 외에도 북한산성과 관련된 14성문이 존재하며, 행궁터와 그 부속건물이 있던 사직터가 있으며, 비봉 정상에 신라 진흥왕순수비가 있다. 북한산은 서울의 배경산이므로 서울의 진산이라 한다. 북한산에서 뻗어나온 북악산과 인왕산, 남산, 낙산을 서울의 내사산이라 하고, 옛날 조선시대에는 이 내사산의 성안의 사대문 안쪽을 서울 장안이라 하였다.
북한산성과 내사산의 성곽은 서울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 삼각산을 오르며 자료를 통해서 삼각산이 언제부터 북한산으로 변경되어 불리우게 된 그 사유를 한번 규명해 보고싶었다. 1983년 북한산과 도봉산 일대를 묶어 북한산국립공원으로 지정하면서 삼각산이 북한산으로 완전히 뿌리내리게 되었다. 건설교통부 산하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행하는 지도를 비롯해 국립공원관리공단이 관리하는 산 표지기 등 모든 공식 명칭이 북한산으로 명기돼 있다.
박경룡 전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연구원은 “고려시대 이후 삼각산으로 불려오다 조선 후기 숙종 때 북한산성을 축성하면서 북한산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아졌고 정조 때는 삼각산과 북한산이라는 칭호가 혼용됐다”고 했다. 그러나 이때의 북한산은 산 이름이 아니라 한강 이북의 큰 산을 의미하는 일반명사 또는 지명이라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김윤우 단국대 동양학연구소 전문위원은 “삼국사기 등 사서를 보면 삼국시대 때 한강 유역은 ‘한산’이라고 불렸다. 강을 중심으로 한강 이북은 북한산, 한강 이남은 남한산이라고 했다.
산 이름이 아니라 지명으로 오래도록 사용됐다”고 지적했다. 박 전 연구원도 “북한산으로 굳혀진 것은 역사적 배경을 무시한 채 삼각산 지역과 도봉산을 함께 ‘북한산국립공원’으로 명명하게 되면서부터였다”며 “이대로 두면 북한산이 삼각산과 도봉산 일대를 모두 일컫는 산 이름으로 잘못 인식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세종실록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지] [여지도서] [증보문헌비고] [북한지] [대동지지] 등의 역대 지리서와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모두 한결같이 삼각산(三角山)으로 기록하였고, 인수봉, 백운봉, 만경봉 세 봉우리가 우뚝 솟아 세(三)개의 뿔(角)과 같이 생겨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였다. 삼각산의 세 봉우리가 이루고 있는 그 모양이 세 개의 뿔과 같이 생겼다고 해서 '세 뿔'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이 '세 뿔'이 지금 우리가 부르고 있는 '삼각산'이나 '서울'의 어원이 되었다. '세 뿔'을 한자(漢字)로 쓰면, 세(서) → 삼(三)과 뿔 → 각(角)이 되어서 '삼각산'(三角山)으로 되었고, '세(석 서)뿔'이 '셔불(세불)' = 불 = 울 곧 '서불→서울'로 되어졌다는 설이 있다. '서울'(셔불, 세부리)은 그 지역의 '수부'(으뜸도시)라는 뜻이다. 특히 신라의 17관등급 가운데 첫번째 품계인 '각간'(角干)을 '셔블한'(敍弗邯)으로 쓰고 있다.
'북한산'이 고려시대부터 천여 년 간 사용해온 '삼각산'이란 본래의 산 이름을 제치고 일반화 된 것은 1915년에 조선총독부의 고적조사위원을 지낸 금서룡(今西龍)에 의한 것으로 본다. 그는 삼각산의 유적을 조사하고 그 보고서의 명칭을 "경기도 고양군 북한산 유적 조사보고서"라고 하였다.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삼각산을 북한산으로 명칭을 변경한 것과 삼각산을 북한산국립공원으로 명명하면서 북한산으로 굳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의 진산’ 삼각산(북한산)은 정상 백운봉(836m), 인수봉, 만경봉을 비롯하여 모두 32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북한산 세 봉우리 북쪽으로 영봉과 상장봉이, 남쪽으로는 석가봉․용암봉․시단봉․보현봉․문수봉 등이 솟아 있다. 문수봉 북서쪽으로 나한봉․나월봉․증취봉(증봉)․용혈봉․용출봉․의상봉 등의 줄기가 백운대 서쪽 줄기인 영취봉(일명 염초봉)․원효봉 줄기와 대서문의 수구에서 만난다.
승가봉․비봉․향로봉, 족두리봉은 문수봉에서 또 하나 서남쪽으로 뻗은 곁줄기에 솟아있다. 그 중 보현봉은 남쪽으로 두 줄기를 뻗어내리고 있다. 남서쪽으로 뻗은 사자능선이 있고, 남동쪽으로는 형제봉이 있는 형제봉능선이 북악으로 이어져 북악의 주맥이 된다. 북악산은 인왕산과 연결이 되어 남산으로 이어서 낙산까지 이어지는 서울의 성곽이 복원 중이다.
이들 봉우리가 이루고 있는 능선은 상장봉이 있는 상장능선, 영봉이 있는 영봉능선, 원효봉과 염초봉을 연결하는 원효봉능선, 산성주능선, 백운대에서 북서쪽에 있는 숨은벽능선, 강북구 수유리로 뻗어나간 진달래능선, 도봉산 우이암과 연결하는 우이능선, 정릉으로 연결되는 칼바위능선, 나한봉~나월봉~용혈봉~의상봉을 하나로 잇는 의상봉능선, 보현봉의 사자능선과 형제봉능선, 대성능선, 승가봉~비봉~향로봉~족두리봉(수리봉)을 잇는 비봉능선, 응봉이 있는 응봉능선, 탕춘대가 있는 탕춘대능선 등 15개가 있다.
삼각산과 북한산의 관계를 이상과 같이 대략 살펴 보았다. 1,000년 전부터 사용한 삼각산이나, 100년의 역사를 가진 북한산이나, 우리에게는 익숙한 산 이름이다. 이제와서 그것을 바로 잡으려는 시도는 결론없는 메아리만 양산 할 뿐이다. 저의 소견으로 결론을 유도한다면, 북한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범위가 삼각산과 도봉산이므로, 북한산은 삼각산으로 부르고, 북한산은 서울의 북쪽에 있는 산, 삼각산과 도봉산(국립공원)을 함게 부를 때 사용을 한다면 어느정도 긍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의견을 제시 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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