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친구의 편지

한국 고건축 박물관

북벽 2009. 5. 25. 18:05

 

한국 고건축 박물관에 들리다.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있는
조상의 얼이 숨쉬는 역사 속, 문화 체험관광지, 한국 고건축 박물관을 가는 길이다


주변에 백제문화 향기 그윽하고, 유서깊은 호서의 소금강인 덕숭산 수덕사가 있고,
가야산, 충의사, 덕산 온천, 추사고택이 자리한 덕산면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박물관이나 다름 없는곳에, 고건축 박물관이 자리 잡았다.


40여년 동안 오직 한국 고 건축 전승에 외길을 걸었던, 거암 전흥수(田興秀) 관장이 일생을
통해 전수받은 선조들의 기예를, 후세에 남겨 주기위해 숭고한 정신으로, 평생 고생 하시면서
모은 전 재산을 들여 1998년 10월 24일 개관한 박물관이다.
부지 6000여평, 연건평 1300평의 제1, 제2전시관과 사진 전시실, 연구동, 팔각정등 10여채
건물이 자리잡았다.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은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고 건축문화재를 실제모형의 1/10,
1/5로 축소 제작하였고, 우리 고 건축에 사용되었던 연장(공구)을
전시 하였으며, 우리 전통건축과 관련된 동양 건축도 전시되어 있다.

 

조금 늦은 오후시간.


혹시 관람시간이 지났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찾았지만
오후 6시까지 관람시간이란다. 우선 도착하면 그 규모와 위용에 놀란다.


거대한 사찰보다 더 아름답고, 크고, 웅장하다.

 

세번 놀랐다.
규모에 놀라고, 넓은 주차장에 놀라고, 제 2전시실인 팔각정은
그 내, 외부의 화려함에 놀란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제 1전시실(본관)에 오른다. 2008년 방화로 소실되어 국민들에게
실망과 안타까움을 주었던 국보 1호 숭례문 축소모형을 만난다.


1/10로 축소된 모형.
다른 모형들과는 달리 그 모습, 그대로 단청이 되어있다.
이번 소실로 재건하기 위해 이 축소 모형이 서울로 옮겨 졌다가
다시 이 자리에 왔단다.


숭례문은 수도의 성문(成門)으로 당당한 면모를 지닌 조선 초기 대표적 건축물이란다.
이런 축소모형이 있었기에, 그 당시 그 기술에 가깝도록 원형으로 복원할 수 있을것
이란 생각이 들었다.


숭례문 축소모형도 대단하지만 이곳 전시실에는 대한민국 국보급 사찰이나
유명한 건축물은 모두 모형으로 만들어져 있다.
외향 위주가 아닌 건축학 측면에서 내부구조를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오픈된 구조의 모형이다.


대표적인 건축물인 속리산 법주사 팔상전만 적어본다.
현존하는 한국의 유일한 목조 다층탑인 충북 보은 속리산
에 있는 법주사 팔상전(琺住寺 捌相殿).

 

 

 

         

 

몇 해전 새로 만든 큰 청동 미륵불과 함께 만나는 팔상전.
외부 모습만으론 그 목조 건축물의 구조를 알수가 없다.
이곳 전시관에는 그 목조 구조 내부를 한눈에 볼수 있도록 모형을 만들어 놓았다.


그 모형을 보면 "아-- 이런 정교함이" 하고 감탄할 수 밖에 없다.


무거운 기와 중량을 이겨내야 하는 구조. 그곳엔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기술이 내재 되어 있었다. 지금 처럼 그 당시는 철구조물이 아닌
오로지 나무로 만든 목조구조 였으니 그 심오한 경지에 스스로 감탄사를
적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기둥이 내려 앉거나, 변형되지 않도록 기석 주변 기초를 하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우고, 보를 건너면서 하중을 분산하기 위해 다 포집 양식의 공포구조.


속리산 경관과 어울려 매우 아름답게 자리잡은 팔상전 모습.
모형만 보아도 속리산 법주사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속리산 법주사 팔상전외에 금산사 미륵전,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 종묘 정전,
청평사 회전문등 30여개 주요사찰의 고 건축물 모형을 만날수 있다.



 

공포, 귀포, 보, 팔작 지붕, 맞배지붕, 모임지붕 등 뜻도 모르는 용어를 설명을 통해
이해 할수 있었다 기와모습 그리고 그 구성원도 많다.


지붕장식으로 용마루 양쪽에 새날개나 물고기 꼬리 모양의 장식기와를 올리는것을
칭하는 치미 라든지, 추녀마루 끝에 제일 앞에 앉아 있는
사람 모양의 장식기와를 필두로 하여 여러 동물 형상으로 이루어져
올라간 기와를 말하는 잡상 등 옛 고건축에서 칭하는 용어에서 신선함과 재미가 느껴진다.


사찰이나 고건축의 문과 창도 그저 만들어진게 아니다.


문짝이 없이 문설주만 서 있는 홍살문 부터,
기둥이 일렬로 있다는 의미의 일주문.
환기나 일조를 위해 벽에 붙박이로 만들어지는 봉창.
나무작대기를 받쳐 고정하는 벼락닫이 창 등
그 의미와 용어가 참 재미있으면서도 깊은 뜻이 내재되어 있슴을
알수 있었다.


중요무형문화제 제 74호로 지정된 인간문화재 대목장 전흥수씨가 쓰시던
각종 연장과 기와 및 그 부속품, 문과 창문, 철 장식, 돌 쩌귀등도 만날수 있어
아련히 내 어린시절 시골에서 초가집 짓던 어른들의 모습이 연상 되었다.


먹통에 먹줄을 당겨 대패질한 목재에 선을 팅기던 옛 목수 아저씨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귀에 연필을 걸치고, 열심히 대패질 하시던 목수 아저씨.
이젠 시골에서도 그 모습을 볼수가 없다.


짧은 시간, 안내인과 함께 돌아본 고 건축 박물관.   많은것을 배우고 간다


사찰건물의 궁금증이 오늘 방문으로 많이 풀렸다.
기둥에서 하중을 분산하는 구조의 공포 모습을 나는 지금까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건물의 외양을 위한 하나의 장식물로만 생각 했었기 때문이다.
그런 심오한 구조역학이 내재 되어있는줄은 기계를 전공한 나도 오늘 처음 알았다.


그 옛날, 궁궐이나 사찰을 지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목수들의 땀과 노고가
담겨졌을까?   짐작이 간다.


우선 사용할 목재를 구해야 하고, 그것을 운반해서 뒤틀림이나 변형이 없도록
자연건조 하여야 했을거고, 지금이야 도로가 잘 만들어져 산속의 사찰도 금방 갈수 있지만,
당시는 그야말로 세속과 떨어진 깊은 산골이었는데,운반은 어떻게 했을까 ?
하는 의문도 들었다.


우리는 사찰에 가면  대웅전을 보고 "우와  멋있다 웅장하다' 는 단순한 감탄사만 했을 뿐이지만
그곳엔 대목장의 지혜와 목수, 일꾼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서려 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많은 사찰의 구조를 이해하고,고 건축의 일면을 배울수 있어 내겐 정말 값진 방문이 되었다
안내인이 건네준 책자는 내게 그 어느 책보다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고맙습니다

잘 간직 하며 수시로 공부 하렵니다.


이제 사찰이나 궁궐을 방문하면 그 건축물의 구조부터 눈에 들어오리라


위대한 한국의 고 건축물들, 영원하리라

그리고 목수들의 지혜와 기술은 영원히 전수 되리가 믿는다.

 

                                                       (숭례문 축소물 사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