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서희태밀레니엄심포니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서희태의 클래식 바이러스
]격려와 환호의 박수라면 큰 문제가 될까]얼마 전 모 유명 오케스트라의 공연
을 보러갔다. 이날의 주요 레퍼토리는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협주곡 D장조 작품35와
드뷔시의 교향시 ‘바다’ 등으로 짜여져 있었다.
요즘 공연장에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우리 청중들의 수준은 갈수록 높아지는 듯하
다. 1부에서 3악장으로 구성된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할 때 악장과 악
장 사이에 박수를 치지 않는다는 것쯤은 모두 알고 있는 듯 모든 관객이 숨을 죽인 채
연주를 감상했다.
그런데 문제는 2부에서 일어났다. 아니, 문제가 일어났다는 표현 자체가 나의 잘못된
생각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2부에서 드뷔시의 교향시 ‘바다’를 연주할 때였다.
이 작품은 ‘3개의 교향적 스케치’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제1악장 '해상의 새벽부
터 정오까지'와 제2악장 '바다의 희롱 또는 파도놀이', 그리고 제3악장 '바람과 바다
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1악장이 끝나고 2층의 몇몇 관객이 박수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순간 일부
관객들의 웅성거림과 지탄의 눈길 속에 박수를 친 사람들은 무슨 죄인이라도 된 양 움
츠러들었고, 연주자들 또한 약간 무안한 표정을 지음으로써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되
었다.
물론 이날 공연의 주의사항에는 ‘악장 사이의 박수는 삼가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문
구가 분명히 들어있었다.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은 연주자에게는 악장과 악장을 긴밀하
게 연결해서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려는 뜻이 있고, 또 청중들에게는 조용히 침묵
하는 가운데 이전 악장의 여운을 되새기면서 다음 악장을 기다리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이런 전통은 언제부터 왜 생겨났을까?
바흐나 모차르트시대는 물론이고 193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악장과 악장 사이 관객들
의 박수가 연주자의 자신감을 높이고 관객과 교감을 이루는데 아주 중요한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Wilhelm Furtwangler, 1886~1954)가 이런 관행에
문제를 제기했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누구인가. 1920년에는 베를린 국립 관현악단
, 1922년에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을 거쳐 카라얀이 집권하기 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자리에 올랐고, 이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잘츠
부르크 축제, 그리고 바이로이트 축제의 음악 감독이 되어 지휘자가 누릴 수 있는 최
고의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런 그가 “모든 악장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전곡이 끝날 때까지 그 흐
름은 유지되어야 하며 관객들도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감상하기 위해서는 악장 사
이의 박수는 의미가 없으므로 삼가 달라”는 말로 악장사이에 박수를 금지하도록 유도
했고 당시 비평가들과 동료지휘자들에게 자문을 구한 결과 대부분의 동의를 얻어 이
내용이 관례화된 것이다.
물론 연주회에서 관객들은 이런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관례를 잘 지켜주는 것이 지
휘자나 연주자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에 조그맣게 씌어있는 이런 문구를 미처 보지 못한 관객이 음악에 취
해서 무심결에 박수를 쳤다면 그 정도는 너그럽게 보아 넘기는 여유도 필요하지 않을
까. 그가 지휘자나 연주자를 무시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일
이니까. 아니, 오히려 음악에 심취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감동을 표시한 것일 테니까..
예를 들어 20분 이상을 끌며 연주해 오던 차이코프스키의 그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 1
악장이 격렬한 포르티시모로 끝나고, 이미 땀범벅이 된 연주자를 향해 박수가 터져 나
오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실제로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Sviatoslav Richter)라는 러시아의 전설적인 피아니스
트는 정열적인 1악장이 끝나고 박수를 받지 못하면 분위기가 썰렁하고 조금 섭섭하다
고 말하기도 했다.
상습적으로 악장 사이에 박수가 터져 나오는 또 하나의 곡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6
번 ‘비창’이다. 엄청난 속도와 웅장함을 지닌 3악장이 끝나고 나면 이 곡에 ‘비창
’이라는 제목을 붙게 한 비통한 느낌의 느린 4악장이 이어진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대부분의 관객들은 그 사이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박수를 치게 되
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이 부분에서 자주 박수를 참지 못한다. 물론 음악 선
진국에서도 이 곡을 연주할 때 이 부분에서 박수가 터져 나오는 경우는 허다하다.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하는 고전파 작곡가 하이든은 재미나는 유머로 이런 관객들의 특
성을 그의 현악사중주와 교향곡 작품을 통해 표현했다. 그의 ‘러시아 사중주곡집’
두 번째 곡 작품33-2
로디가 시작되기를 무려 세 번이나 계속한다. 또 교향곡 90번의 마지막 4악장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두 번이나 곡이 끝난 것처럼 연주를 멈추는 작곡을 해서 관객을 상대로
재미난 장난을 쳤다.
그런데 문제는 공연장에서 사소한 실수로 민망한 일을 당할까봐 클래식공연 관람을 꺼
려하는 사람이 꽤 많다는 사실이다. 물론 정적 속에서 나만의 감동에 빠지고 싶은 청
중도 있겠지만 또 어떤 이들은 훌륭한 연주에 몰입해서 터져 나오려는 박수를 참다보
면 되레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연주의 흐름을 끊는 맹목적인 박수로 타인의 감상을 방해하는 건 분명 공연장 분위기
를 흐리는 일이지만, 불쾌함을 유발할 정도의 상황만 아니라면 격려와 환호의 박수가
좀 터져 나온들 뭐 그리 큰 문제가 되랴.
간혹 지나치게 예민한 어떤 사람은 연주에 몰두하기보다는 악장이 끝날 때 혹시 객석
에서 ‘박수가 나오면 어쩌나..’하는 걱정으로 쓸데없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니..
이것이야말로 관례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아닐 수 없다.
클래식 공연장의 이런 독특한 분위기와 관객들 사이 미묘한 선긋기가 클래식을 감상하
고자 하는 많은 대중들의 의욕을 꺾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반성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
다.
'[좋은 말 그리고 상식] > 약간 쓸모있는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날이 유래 (0) | 2010.02.15 |
---|---|
알쏭달쏭 사이시옷 (0) | 2010.01.28 |
그리스 신화 인물사전 (0) | 2009.12.30 |
그리스 로마 신화 12신 계보 (0) | 2009.12.30 |
빙판길 안전운행 10계명 (0) | 2009.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