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쳐보기의 심리를 가장 잘 이용한 사람 중의 하나가 바로 영화감독 히치콕이다. 그가 주로 다룬 장르인 서스펜스 스릴러 자체가 이미 관음증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창]의 남자주인공은 왼쪽 발이 부러지자 일종의 대리 남근을 상실한 듯 남의 집 창문을 엿보는 것을 낙으로 삼는다. [사이코]의 남자주인공 역시 벽에 몰래 구멍을 뚫어놓은 뒤 자신의 모텔에 들른 여자의 목욕 장면을 훔쳐본다. 어디 사람 뿐이랴. 높은 허공에서 불에 탄 마을을 내려다보던 영화 [새]에서의 새의 시점 샷도 관음증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관음증의 핵심은 역시 나는 보는데 상대방은 그 시선을 모른다는 데 있다. 상대방은 모르기 때문에 시각적 쾌락이 배가되는 것이다. 여성의 속옷 브랜드인 Elle MacPherson 광고는 이런 훔쳐보기의 심리를 그대로 이용한 것이라고 하겠다. 조금 열려진 문틈 사이로, 창문 사이로, 그리고 벌어진 커튼 사이로 속옷바람의 여성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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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훔쳐보기의 기본적인 구상은 됐고, 그 다음은 보는 사람의 시선이다. 응시의 방향은 권력의 위치를 결정짓는다는데 카메라의 시선이 관음자 입장에 놓여 있다면, 당연히 관객도 그 관음자의 시선에 동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광고들의 앵글은 절묘하다고 하겠다. 또한 연출된 장면 즉, 사진의 내용도 중요할 텐데 사진 하나하나 지나치리만큼 선정적이다.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가슴을 더듬는다든지, 소파에 누워 팬티에 손을 갖다 댄다든지. 그뿐인가. 입는 중인지 벗는 중인지는 모르나 문턱에 기대앉아 팬티를 내린 동작, 그리고 욕조에 물을 받기 위해 수도꼭지를 트는, 그래서 유난히 몸을 숙인 뒷모습이 강조되는 장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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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훔쳐보기는 곧잘 성적 자극과 연관되어지고, 인터넷에 떠도는 그 많은 훔쳐보기 역시 이런 자극의 원동력 노릇을 하는 게 사실이다. 지하철, 화장실, 목욕탕 등 이미 범죄의 수준까지 갔지만. 그런데 이런 훔쳐보기 보다 더 센 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훔쳐보는 걸 훔쳐보는 게 아닐까. 마지막으로 의문 하나. 여성을 타깃으로 한 속옷 광고에서 구지 이런 훔쳐보기의 방법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자들 마음 속에 내재된 노출증? 아니면 여자들이 은근히 즐기는 여자 훔쳐보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