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간 쉬어가세요]]/세상이야기

노블레스 오불리제

북벽 2010. 1. 14. 18:07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간단히 말하면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뜻한다. 사회로부터 정당한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리는 명예(노블리스)만큼 의무(오블리제)를 다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로마 귀족들의 절제된 행동과 납세의 의무를 다하는 범적 생활은 평민들에게 귀감을 주었으며 전쟁이 일어나면 그들은 국가에 재산을 헌납했고 솔선수범하여 전장에 나가 피를 흘리며 싸우는것을 영광으로 생각했다. 2차 대전 때, 루스벨트 대통령의 큰아들은 고도 근시에 위궤양으로 위를 절반이나 잘라낸 사람이었지만 해병대에 자원 입대하였다. 그가 근무하던 제2기습대대가 마킨 제도의 일본군 기지를 기습하는매우 위험한 작전을 앞두고 대대장은 부대대장이었던 루스벨트 소령을 불러 ‘만약 현직대통령의 아들인 귀관이 일본군의 포로가 되거나 전사하거나 하면 일본군은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전쟁에 이용할 것이므로 작전에서 제외 하겠다‘고 통보했다. 소령은 이에 강력하게 반발하여 아버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대통령 루스벨트는 해군참모총장에게 ‘내 아들은 제2기습대대의 장교다. 내 아들이 위험한 특공작전에 가지 않는다면 누가 그 작전에 가겠는가?‘ 하며 아들 루스벨트 소령을 마킨 제도 특공작전에 참가시킬 것을 지시했다. 소령은 작전에 참가하였고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네 아들은 모두 이렇게 2차 대전에 참전하였다. 또 한 사람 생각이 난다. 밴 플리트 장군이다.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밴 플리트 장군의 흉상이 있다. 오늘날 한미우호관계에 공헌이 큰 사람에게 주는 상의 이름이 밴 플리트 상이다. 왜 그럴까? 6.25 한국전쟁 당시 밴플리트장군의 외아들은 폭격기 조종사로 참전을 하였고 작전수행 중 행방 불명 되고 공군은 장군의 아들을 찾기 위해서 필사의 노력을 다했지만 끝내 시신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실종 파일럿의 정규 수색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 때 장군이 전화를 했다. ’이제 정규 수색시간이 끝났으니 더 이상의 특별한 수색이나 구조 활동은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해온 것이었다. 모든 병사들이 최전선에서 죽음과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 아들이라고 해서 특별한 대우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외아들을 잃고서도 한국 사랑을 멈추지 않았던 장군의 마음과 그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기리기 위해서 우리들은 그의 흉상을 세웠고 밴플리트상을 만들었다. 미국 부자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 또한 미국을 지탱하게 하는 전통적 정신이다. 세계적인 부자 빌 게이츠가 자신의 재산 2/3를 부인의 이름을 딴 멜린다자선재단에 흔쾌히 기부를 하였고 이에 질세라 워렌 버핏이 그의 재산 90%를 자기 이름을 딴 재단을 만들 수도 있으련만 그러지를 않고 멜린다자선재단에 맡긴 것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발상이요,행동이다. 이렇게 지도층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국가와 사회에 대해 이바지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많이 아는 것을 나누고 많이 가진 것 만큼 그것을 나눌 때 존경과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庚寅年 폭설속의 혹한의 긴긴겨울 밤... KBS1주말 특별기획역사드라마 "名家(명가)"를 시청하면서 ... 경주최부자 집안에 관한 소개를 해 봅니다. 잘 살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잘 살았다고 하는가? 우리나라의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특권계층의 사회적 책임)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집안이 경주 최 부자다. 경주 최 부자 집안에 관한 이야기는, 그동안 여러 매체를 통해 대략은 알고 있었지만,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이 인상적인 그 집안의 가훈(家訓)이었다. 집안을 다스리는 제가(齊家)의 가훈 '육훈'(六訓)과 자신의 몸을 닦는 수신(修身)의 가훈 '육연'(六然)이 그것이다 '육훈(六訓)'은 -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마라, - 만 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말며, 만 석이 넘으면 사회에 환원하라 - 흉년에는 남의 땅을 사지 마라, - 과객(過客)은 후히 대접하라, - 며느리들은 사집온 뒤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육연'은 - 스스로 초연하게 지내고 (자처초연:自處超然), - 남에게는 온화하게 대하며 (대인애연:對人靄然), - 일이 없을 때는 마음을 맑게 가지고 (무사징연:無事澄然), - 일을 당해서는 용감하게 대처하며 (유사감연:有事敢然), - 성공했을 때는 담담하게 행동하고 (득의담연:得意淡然), - 실의에 빠졌을 때는 태연히 행동하라 (실의태연:失意泰然)다. 경주에 드나든지는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틈틈이 여러 유적지는 둘러 보면서도, 최 부잣집을 방문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는데..., 마침 자료가 있어 우선 소개하며, 어느 햇살 고운날 작정을 하고 길을 나서 그곳을 방문해 볼 계획이다. 일반적으로 " 경주 최 부잣집"하면 세상에 널리 알려진대로 경주 교동에 소재해 있는 "교촌댁"을 일컫는다. 그러나 최 부잣집의 집안 내력을 사전에 인지하게 되면, 경주 내남면 이조리에 위치한 "충의당(忠義堂)"을 먼저 찾아가는 일에, 망설임이 없다. 경주 최 부자는 최치원의 17세 손인 최진립과 그 아들 최동량이 터전을 이루고 손자인 재경 최국선으로부터 28세 손인 문파 최준에 이르는 10대, 약 300년 동안 부를 누린 일가를 일컫는 말이다. 엄청난 재산을 오랫동안 간직해 온 경주 최 부자의 가문을 일으킨 사람은, 바로, 마지막 최부자 최준의 11대조인 정무공 최진립 장군이다. 경주 최씨 사성공파의 한 갈래인 가암파의 시조인 최진립은,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왜적과 싸우고, 나중에 무과에 급제한 뒤 정유재란 때 다시 참전했다. 그 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최전선에서 적군과 싸우다가 순국하니, 그의 나이 예순 아홉이었다. 평소의 생활도 청렴하였던 최진립은 이렇듯 일생을 장렬하게 마쳤다. KBS1 주말(토.일)특별기획 역사드라마 "명가"를 시청하면서..... January.8. 2010 深谷 입니다.·´˝"`˚³ο♥♡
경주최부자 댁 현판 /둔차(鈍次)=재주가 둔해 으뜸가지 못함/어리석은 듯 드러나지 않는 버금감 "겸손을 나타내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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