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토요일은 벌초(伐草)를 다녀 왔습니다.
매년 하는 일이였지만 금년은 좀 달랐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돌아 가신후 처음 맞는 벌초였기 때문입니다.
꼭 1년이 되였습니다.할아버지, 할머니등 조상님들이 모두 한곳에 나란히 모셔졌기에
이동하는 시간은 없었지만 부모님의 산소가 추가되였기에 시간이 좀 더 걸렸지요.
시골 도로에서 200m 정도 밖에 되지않는 산자락이지만
풀들이 얼마나 무성하게 자랐는지 오르는 길부터 예초기로 풀을
베어야 했습니다. 억새등 이름모를 풀들이 서로 엉켜 진입이
어려울 정도였이니까요.
식물이 성장을 멈춤다는 처서가 지나고 음력으로 7월말이나
8월초에 추석 성묘를 대비해 대부분 벌초를 하지요.
내 어릴적 기억은 이맘때쯤 친척들이 낫에 새끼를 감아 들고
벌초하러 오셨던 모습이 떠오름니다. 그 당시는 순전히
낫으로만 했기에 이틀이상 한것 같습니다.꼭 하루씩 저의집에서 묵으셨습니다.
지금은 예초기가 있어 빠르게 할수 있지요.
잡초를 베면서 그립던 부모님과 대화라도 나눌수 있으면 좋으련만
예초기 기계소음과 속도에 빼앗겨 분주하기만 합니다.
빠름과 편함의 이득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정을 잊어 버린듯해
조금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벌초와 금초의 차이를 아십니까?
벌초는 무덤의 풀이 자란 다음 깍아서 깨끗이 하는 행위이고
금초는 금화벌초(禁火伐草)의 준말로 풀이 자라기전에 잡초가
못자라게 방제 하는 일로 불나기 쉬운 봄에 하는 벌초를 칭한다고 합니다.
금초(禁草)라는 말은 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답니다.
토요일은 명절에 버금 가는 차량 행렬이였습니다.
산 골짜기마다 차가 주차되여있고 예초기 소음 소리가 울리더라구요.
서둘지 않아도 빠르게 끝나버린 벌초. 예초기 덕분이지요.
예초기 따라 갈퀴로 베어진 풀 긁어 내기가 더 바쁨니다.
산자락 묘소 앞에 꽤 큰 과수원이 있습니다.
사과가 주종이고 배. 그리고 복숭아, 자두나무도 있습니다.
빨간 홍로가 주렁 주렁,열려익어가고 자두도 아직 매달려 있습니다.
부사는 아직 푸르기만 합니다.추석전 출하가 어렵다고 하네요.
사과나무를 손보고 계시던 주인께서 우리들에게 먹어 보라고 사과를
던져 주십니다.마음착한 농부 아저씨이지요.각박한 세상이지만
아직 농촌은 인정이 메마르지 않았습니다.
금방 사과나무에서 따서 그럴까? 참 맛이 좋았습니다.
신선한 바람과 충주호의 맑은 물,화사한 햇볕이 듬뿍담긴 충주사과.
여느 지방 사과에 견주어 빠지지않는 답니다.충주에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사과나무 가로수길이 있습니다.한가지 슬픈것은 그것을 지키는 요원이 24시간
교대로 감시를 하고 있다는 것.견물 생심 때문이겠지요.
1년에 한번 그것을 수확해서 요양원이나 양로원등 시설에 전달 한다고 합니다.
늘 오가던,내고향 충주길.
부모님이 하늘나라로 가시자 그 회수가 확연히 줄었습니다.
오가던 길은 늘 변함이 없으나 그 곳에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게 변함입니다.
길가에 코스모스 한들거리고,붉은 칸나는 아름답게 피어 길거리를 빛냅니다.
남한강물 변함없이 흐르고,세계 조정경기 유치확정이란 프랑카드는 길거리에
펄럭이고,신작로는 여기저기 새로 만들어져 차들을 여유롭게 소통시킵니다.
충주호.
만수된 상태로 물결이 바람에 일렁인다.
유람선 물위를 힘차게 달리고, 산자락 그늘은 물속에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저 푸른 산자락 잎새들도 머지않아 아름다운 단풍으로 변해 이호수위에 그들의
모습을 비추리라--.
벌초 다녀 오는길,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